중국 욕조(BATH)는 더욱 실감 난다

작성자 
윤석진 기자
작성시간
2019-11-06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해리 포터는 숙적 볼드모트와 마지막 전투를 치르던 중 공격을 받고 쓰러져 가사상태에 빠지고, 자신의 멘토였던 덤블도어 교수를 만난다. 이미 죽은 덤블도어와 대화를 나누던 해리는 이게 현실인지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궁금해 한다. 덤블도어는 “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현실이 아닌 건 아니란다.”고 말하며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경험을 통해 볼드모트를 이길 힘을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도 마찬가지다. AR은 현실을 배경에 두고 가상의 이미지나 글자 따위를 띄워 주는 것이라 일부만 진짜다. VR은 통째로 가짜다. 시신경을 타고 들어온 조작된 정보가 뇌를 속여서 진짜인 양 둔갑한 것인데, 이런 구분은 이제 무의미해 보인다. AR, VR은 게임과 쇼핑, 관광, 헬스케어, 교육 등 각종 분야를 넘나들며 실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현재는 미국 기업들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페이스북은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스카우터를 만들 정도로 앞선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음식을 보면 칼로리가 뜨고, 아픈 아이를 보면 온도가 체크되는 스마트글라스를 개발 중이다. SNS 회사답게 사람 얼굴을 보면 이름을 알려 주는 안면 인식 기능도 탑재할 예정이다. 이 안경이 상용화되면 조리사와 소아과 의사의 입지는 좁아지겠지만, 일반인들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구글은 구글맵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간 ‘증강현실 맵’을 개발했다. 이걸 쓰면 허공에 화살표와 이동해야 할 거리 수치가 함께 뜬다. 표지판이 없어도 난생처음 가는 도시를 우리 동네처럼 활보할 수 있다. 구글은 직접 입술에 발라 보지 않아도 사용했을 때의 느낌을 알 수 있는 증강현실 립스틱, 보기만 해도 번역이 되는 표지판 번역기까지 선보였다.


중국은 이 분야의 후발주자다. 값싼 VR 헤드기어를 개발하거나,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중소업체들이 있을 뿐이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먼저 중국 정부는 AR의 숨겨진 잠재력을 발견하고, 주 관심사인 범죄자 감시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중국 내 6개성은 베이징 소재 스타트업 엑슬룽(Xloong)이 만든 스마트글라스를 범죄자 색출에 이용하고 있다. 경찰이 엑슬룽 글라스를 쓰면 중앙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돼 사람의 실제 얼굴 위에 주민등록증과 차량 번호가 함께 뜬다. 덕분에 경찰은 손에 뭘 들거나 신원 조회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두 손이 자유로우니 범죄자를 뒤쫓거나 몸싸움을 벌이기 편하다.


BATH(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도 정부의 뒤를 이어 AR, VR 개발 대열에 합류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14억 인구를 등에 업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인구수가 많다는 것은 단순히 소비시장이 크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14억 정보가 빅데이터로 구축돼 AI의 근간이 되면, AI는 실제 상황과 가상의 이미지 사이의 상호작용을 밑단에서 조율해 AR이 정교하게 작동하도록 돕는다. 빅데이터와 AI, AR의 시너지를 잘 활용하는 기업으로 바이두를 꼽을 수 있다. 바이두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바탕으로 단순 검색엔진에서 테크 회사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상품을 검색하면 이해를 돕는 3D 영상이 뜨는 AR 앱까지 개발했다. 가령 로레알 샴푸를 바이두에서 사면 핑크빛 거품이 스마트폰 화면 아래로 흘러넘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바이두는 쇼핑뿐 아니라 교육에도 손을 뻗었다. 미래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바이두가 그리는 미래 학교에선 교사의 잡무가 줄어든다. AR로 몸속 장기부터 화산 속 용암까지 모두 3D로 보여 주면 되기 때문에 교사가 그림을 그리거나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학생 입장에서도 효과 만점이다. 지루한 종이책 대신 생생한 영상으로 공부를 하니, 집중력과 기억력이 높아진다. 바이두가 개발한 앱을 이용하면 고대 유적지의 복원된 모습도 볼 수 있어 역사 지식을 쉽게 함양할 수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AR, VR 붐은 중국으로 이어져, 현실을 더 실감 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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