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권, STEM 지식에 달렸다?

작성자 
윤석진 기자
작성시간
2019-11-27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국제연합(UN)은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다. 지난 1975년 화재로 여성들이 숨진 사고를 계기로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만들었고, 여성에 대한 각종 차별과 폭력에 대항해 성평등을 이룩하고자 ‘여성 폭력 추방의 날’도 지정했다. ‘홀아비의 날’이나 ‘농촌 총각의 날’은 없지만, ‘과부의 날’과 ‘농촌 여성의 날’은 있다. 여성의 사회·문화적 위치가 남성에 비해 낮다는 방증이다. ‘세계 여성 과학자의 날’(International Day of Women and Girls in Science)도 있다. 여성 과학자들이 모여서 성과를 자축하는 날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여성 과학자는 전 세계적으로 그 수가 적을 뿐 아니라 성과도 미미하다. 지난 118년 동안 여성 과학자가 받은 노벨상은 전부 합쳐야 20개, 전체의 3%에 불과하다. 97%에 해당하는 587개 노벨상은 남성들이 싹 쓸어 갔다.


여성이 원래 남성보다 과학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남녀의 뇌 차이가 과학적 성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그보다 가정환경이나 사회문화와 같은 외부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대는 남성, 인문대는 여성”, “남성은 수학적 사고가 뛰어나고 여성은 어휘력이 발달했다”는 말이 일종의 편견이란 것이다. 그럼에도 일찌감치 ‘수포자, 과포자’의 길로 접어드는 여학생이 많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조금만 막히면 “역시 이과는 체질에 안 맞는다”며 문과로 전향하기도 한다. 수학을 원래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인데, 수학 공부의 ‘골든타임’을 그냥 흘려보낸다. ‘여자는 수학을 못할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생각이 정말로 수학을 못하게 만드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편견 때문인지 여학생의 스템(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분야 진출은 저조하다. 유네스코(UNESCO)가 2014~2016년 동안 조사한 결과, 전 세계 여학생의 30%만이 스템 관련 전공을 선택했다. 의사소통 기술과 정보 쪽은 3%로 지원자가 가장 저조했고, 자연과학, 수학, 통계는 5%, 엔지니어링, 매뉴팩처링, 컨스트럭션은 8%에 그쳤다. 이과 과목 대신 다른 걸 잘하면 그만이란 사람이 있지만, 이는 너무나도 안일한 생각이다. 그러기엔 잃는 게 너무 많다. 수학, 과학을 포함한 스템은 이·문과를 넘어 ‘범용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적 사고에 기반한 마케팅, 과학 지식에 따른 인사 평가와 같이 문과 분야에 이과 기초 지식이 융합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은 IT 전문가, 엔지니어뿐 아니라 마케팅, 인사, 총무 담당자에게도 수학·과학적 사고와 탐구력을 요구한다. 문이과 융합 인재라야 대접 받는다.


기업은 실제로 스템 인력에 더 많은 돈을 주고 있다. 미국 교육부의 2014년 연구 자료에 따르면 스템 전공 직장인의 평균 연봉은 6만 5000달러(7600만 원)로 조사됐다. 비 스템 전공 직장인이 받는 4만 9500달러(5800만 원)보다 무려 1700만 원 더 버는 것이다. 임금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스템 중급 경력자가 8만 8500달러를 벌 때 비 스템 경력자는 6만 200달러에 머문다. 비 스템 전공자는 시간이 지나도 스템 직원 평균 연봉에도 미치지 못한다.


각 국가들이 여성 스템 교육을 장려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성이 경제적 소수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특히 중국은 여성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다. 1995년 양성평등을 기본 국책으로 선언한 후 여성의 교육기관 등록과 학위 취득, 유학 등을 지원해 왔다. 그 결과 중국여성의 문해력은 2000년 86.5%에서 2017년 92.7%로 신장됐다. 스템 관련 업종에 진출한 여성도 꾸준히 늘어나, 2013년 선임급 여성 IT 부문 경력자는 660만 명에 이르렀다. 이는 전체의 44% 수준으로, 지난 2000년보다 9% 증가한 것이다.


스타트업 부문에선 ‘걸크러쉬’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활약 중이다. Silicon Valley Bank(SVB)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IT·헬스케어 스타트업 중 70%가 1명 이상의 여성 임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캐나다(60%), 영국(57%), 미국(53%)보다 높은 수치다. 여성이 직접 회사를 차리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 업계의 여성 창업가의 비중은 55%로 웬만한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다만, 통계가 현실을 다 반영하지는 않는다. 스템 관련 회사에 취업했을 뿐, 실제로는 마케팅, 홍보 등 비스템 업무에 투입된 여성이 많다는 지적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시선, 여전히 남아 있는 남아선호사상 또한 넘어서야 할 과제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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