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수학’여행으로 알차게

작성자 
박현선 기자
작성시간
2019-12-12

연말이 성큼 다가왔다. 크리스마스, 신정 같은 가족 행사는 물론 겨울방학도 기다리고 있다. 자녀들은 어딘가 놀러가자고 성화이지만 어쭙잖은 곳에 잘못 나갔다간 꽉 막힌 인파 속에서 피로만 누적하고 돌아오기 십상이다. 좀 더 특별하고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나들이 장소는 없을까? 그래서 여느 검색창에 ‘겨울 여행 추천’으로 쳐서는 절대 겹치지 않을 만한 특별한 여행지들을 선별했다. 이른바 ‘수학’(math)여행이다.


삼학도에서 한붓그리기: 전라남도 목포 삼학도


출처: 목포시청 홈페이지


삼학도는 전라남도 목포 앞바다에 있는 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섬이었던’ 육지다. 현재는 방조제를 만들어 육지가 됐다. 세 마리의 학이 내려앉아 생겼다는 전설이 있는 이 고즈넉한 세 봉우리는 수로를 따라 걷기만 해도 운치 있지만, 동시에 수학에서 매우 유서 깊은 문제이자 현대에도 중요한 한 이론과 맞닿아 있다.


삼학도는 각 봉우리와 이를 감싸는 수로, 그리고 수로를 가로질러 봉우리들을 이어 주는 여러 개의 다리로 이뤄져 있다. 이 모양은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를 연상시킨다. 쾨니히스베르크 다리는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당시 독일, 현 러시아 칼라닌그라드)에 있는 7개 다리에서 유래한 문제로, 프레겔 강을 경계로 나뉜 2개의 큰 섬과 나머지 도시 부분을 연결하는 7개의 다리를 각각 한 번씩만 건너서 처음 시작한 위치로 돌아오는 경로가 있는지를 묻는 문제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지도. 프레겔 강과 일곱 개의 다리가 표시돼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누가 처음 생각해 냈는지 모를 이 문제는 간단해 보이면서도 꽤 어려워 오랜 시간 수학자들의 골머리를 썩이다가 1735년 스위스 출신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해결됐다.


다리와 지형을 점과 선으로 단순화해서 표현하면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는데,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는 결국 주어진 그래프에서 한 꼭짓점에서 시작해 펜을 한 번도 떼지 않고 모든 변을 한 번씩 지나서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익숙한 용어로 말하자면 ‘한붓그리기’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한붓그리기는 어린이용 퍼즐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유형의 문제지만, 수학에서는 ‘그래프 이론’이라는 매우 중요한 분야에 연결돼 있다. 그래프 이론은 꼭짓점과 점들을 연결하는 간선으로 이뤄진 수학 구조를 연구하는 분야로, 조합, 위상수학, 확률, 알고리즘 등 다양한 범위에 응용되는 핵심 이론이다.


그래프 이론 자체는 깊이 알 필요는 없지만, ‘한붓그리기’라는 익숙한 문제가 현대 수학의 중요한 바탕이 되는 이론과 연결된다는 점과, 그 시작이 삼학도의 다리와 같은 모양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정도만 알아도 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수학으로 만나는 근대 역사 투어: 대구 근대문화골목


출처: 대구 중구청 홈페이지


대구 중구에는 특별한 투어 코스가 있다. ‘근대골목투어’는 근대 문화유산의 흔적이 남은 도심을 따라 걷는 투어로, 근현대사에 얽힌 이야기와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투어 코스는 경상감영달성길, 패션한방길, 삼덕봉산문화길 등 다양한데, 그중 시선을 끄는 것이 ‘근대역사 Math-tour’다.


골목투어 프로그램에는 기본 코스 외에 각각 특징을 둔 테마 코스가 있다. 역사가 깊은 나무를 따라가는 나무 투어, 대구 근대 문인과 관련된 거점 등을 따라가는 문학 로드, 그리고 학생들이 수학문제를 풀면서 근대역사를 배울 수 있는 근대역사 Math-tour가 그것이다.


Math-tour는 근대골목 2코스에 속해 있으며 ‘대구 첫 사과나무’ 지점부터 ‘화교소학교’에 이르는 2시간짜리 여행경로다. 근대 유적 11개 지점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문제를 확인하고 풀 수 있다. 근대역사와 관련된 수학 문제들로 역사와 수학을 동시에 익힐 수 있어 ‘두 마리 토끼’ 같은 수학여행지다.


서울 근교 수학 놀이터: 경기도 남양주 수학박물관


출처: 수학박물관 홈페이지


전라도나 대구가 너무 멀다면 서울 근교에서 가 볼 만한 수학 여행지로 남양주 수학박물관을 추천한다. ‘문화적 소양으로서의 수학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 및 교육기관’이라는 소개처럼, 입시 지식으로서의 수학이나 기술적인 수학이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처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수학을 지향하는 문화시설이다.


수학체험전에서만 볼 수 있던 교구들을 상설 전시하는 수학박물관, 어린이들이 놀면서 자연스럽게 수학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수학놀이터, 수학문화를 배울 수 있는 체험활동 프로그램 등이 운영되고 있다.


수학은 정적이고 책상에서만 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편견을 깨고, 이번 겨울 방학에는 자녀들과 함께 수학으로 놀고, 즐기고, 여행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 보면 어떨까.



박현선 기자 | tempus1218@donga.com

동아사이언스 <수학동아>에서 수학 기사를 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수학’이란 학문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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