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이 반이다
작성자
임국영 작가
작성시간
2018.10.10
조회수
935

초두효과

일설에 의하면 사람에 관한 평가는 대체로 첫인상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처음 마주한 지 3초 남짓한 사이 상대의 스타일, 생김새, 목소리, 체취 등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자기도 모르게 평가하고 인식한다는 얘기다. 언뜻 불합리한 얘기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사람의 인지 능력이란 이렇게 얼렁뚱땅이다. 단편적이고 외부적인 요인에만 의존해서야 어찌 사람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겠는가. 좋아, 난 그러지 않겠어! 이것 봐봐. 알고 보니 이 사람은 꼼꼼한 사람이었어! 그래, 첫인상과는 다르게 말이야… 뭐, 이런 식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일별한 바로 그 순간 입력한 정보에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가 없다. 상대를 알아 간다는 것은 처음에 인지한 인상이 맞는가 맞지 않은가를 확인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를 두고 ‘초두효과’라고 일컫는다. 먼저 제시된 정보가 후에 얻게 되는 정보에 비해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현상을 뜻한다. 이것은 비단 사람에 대한 인상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 이쯤 되면 다음에 어떤 얘기가 나올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이 효과는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첫 문장, 그것은 독자에게 내미는 최초의 악수.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시작이 반이다!

“마무리만 도스토옙스키 급이면 뭐해? 첫 부분이 그 모양인데 말이야!”

언젠가 한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작가 지망생들의 작품을 심사하다 보면 도입부가 엉망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작품은 대체로 고평가 받기 힘들다는 논지였다. 말하자면 처음을 이미 망쳤으니 그 뒤를 아무리 훌륭하게 마무리 짓더라도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이미 가망이 없다는 얘기였다. 더군다나 내공이 깊은 이의 안목에 상대가 가진 실력이 첫 문장 첫 문단부터 얼추 가늠되기도 했을 것이다. 삿된 말로 ‘견적’이 나온다고 해야 하나. 나야 그런 내공까지는 아직 없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고견이었다. 어떤 글을 읽을 때 중간이나 마지막을 먼저 살피는 사람이 많을까 첫 부분부터 읽어 내려가는 사람이 많을까? 통계를 낼 필요도 없어 보인다. 심사를 맡거나 함께 연구를 하는 입장이 아니고서야 어떤 글을 마지막까지 읽어 내야만 하는 의무나 의리는 없다. 대부분의 독자는 도입을 읽자마자 판단한다. 이 글을 마저 읽을 것인가 읽지 않을 것인가. 비단 소설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물론 오해하면 안 되는 점은 도입만 그럴싸하게 썼다고 해서 그 글이 이미 어떤 성취를 이뤘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뒤로 갈수록 수준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글은 처음에 받은 좋은 인상을 배반함으로 더 박한 평가를 내리게끔 만들기도 하니까. 글은 유기체다. 처음과 중간과 마무리가 따로 기능하면서 글 전체를 이룬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처음도 중간과 마무리도 다 잘 써야 한다는 얘기다. 하나 마나 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으나 숙고해야만 하는 얘기다. 처음을 잘 쓰면 중간과 마무리도 그 기운을 빌려 쭉 써내려갈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도 하다. 그리고 솔직히, 처음이 그럴싸하면 뒷부분도 어쩐지 그럴싸해 보인다. 첫 단추를 잘 끼어야 한다거나 시작이 반이다(?) 같은 속설들도 있지 않은가.

자, 각설하고, 그렇다면 좋은 도입, 그러니까 좋은 첫 문단과 첫 문장은 무엇이고 어떻게 쓰는 것일까?

 

반갑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기껏 얘기를 이것저것 늘어놓은 주제에 이제 와 김빠지는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 역시 첫 문장을 잘 쓰는 편이 못 된다. 그런 방법이 따로 있다면 나도 묻고 싶을 지경이다. 요컨대, 어떤 정석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 가지 팁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얘기한 첫인상에 관한 얘기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내가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상대의 첫인상을 각인하고 있는 순간, 상대도 마찬가지로 나를 판단하고 있으리라. 평가하고 인지하는 주체가 아니라 평가를 받고 인지되는 객체로서 스스로를 판단해 보자.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칠까? 당신은 상대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은가? 당신은 먼저 웃으며 손을 내미는 사람인가 아니면 조심스럽게 목례를 건네는 사람인가. 글쓰기는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언어화하는 작업이다. 나다운 글쓰기, 나만의 글쓰기를 위한 시작은 도입을 쓰는 방식과 밀접하다.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 매력적으로 비치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유지한 채 첫마디를 떼야 하는 것이다.

부끄러운 얘기를 하나 더 하려 한다. 내가 이 코너에 쓴 모든 글의 도입은 언뜻 보면 글쓰기와는 상관없는, 영 다른 소리를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나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투영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속내를 쉽게 꺼내지 않지만 당신은 내 이야기에, 나에게 이목을 계속 집중했으면 좋겠다. 너무 속이 투명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뭐라고 해야 할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인 것이 들통날까 봐 겁도 많이 난다. 그래서 진의를 함부로 내보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에둘러서 풀어 두는 것이다. 나를 끝까지 봐주세요. 부탁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나의 태도와 첫 문장이 감히 좋은 예라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고민해 보자. 당신의 첫 인사말에 대해서. 



임국영 작가 | dlarnrdud89@naver.com

아침에 잠들고 밤에는 일하며 새벽에 소설을 쓴다. 농담을 좋아한다.   


댓글 (0)
무체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