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이름의 전시회
작성자
임국영 작가
작성시간
2019-02-11
작성시간
업데이트 : 2019-02-11
조회수
461

당신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누군가는 이름과 나이, 고향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이름을 댈 수도 있다. 전형적이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소개할 때 거의 반사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고 마는 기초정보다. 조금 더 살을 붙인다면 직업과 취미 그리고 특기, 남들과 구별되는 신체적 특징을 얘기할지도 모른다. 좋다. 그건 그렇다 치자. 그래서 도대체,


당신은 누구란 말인가?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받게 된다면 대체로 당황하거나 마음이 상해 버릴 것이다. 자리를 피해도 되고 버럭 화를 내도 좋다. 당신이 예의 없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깨닫게 될 테니까.

한편 어떤 사람은 이렇게 답할 수도 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러브레터>도 좋지만 그보다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 더 좋습니다.” 공교롭게도 내가 본 적 있는 작품이므로 우리의 대화는 꽤 이어질 수 있으리라. 그런데 만약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에 빠져 있습니다라고 답해 버린다면? 조금 난감해지고 말겠지만, 상관없다. 나는 몰라도 당신이 알고 있으니까. 이제부터 알아 가면 되는 일이다. 나는 이제 막 관심이 생긴 참이니까. 물론 당신이 허락해 준다면 말이다.


영 뜬금없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말았지만 가장 근원적인, 그리고 이제껏 내가 써온 기고문 전반에 걸쳐 변주해 온 테마에 관해 한 번 더 이야기해 보려 한다. 창작적인 글쓰기란 자신에 관해 깨닫고 느끼는 일이며 다시 그것을 타인에게 전하는 일이다. 활자로 하는 큐레이팅, 이라고 하면 좋을까?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당신을 큐레이팅하라

큐레이터(Curator)란 본디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전시 책임자 내지 관리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큐레이션, 큐레이팅이라는 말은 이 큐레이터라는 직책에서 비롯한 파생어이자 신조어다. 요즘엔 전시회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제법 친숙한 단어다. 마치 큐레이터들이 전시회를 기획해 내는 일처럼 기존에 존재하던 물건이나 정보를 수집하고 선별한 뒤 다시 어떤 관점이나 의도에 입각하여 연출하고 타인에게 선보이는 행위 일체를 뜻한다.

나는 앞서 창작적인 글쓰기란 ‘활자로 하는 큐레이팅’이라는 요지로 말한 바 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우리가 작문에 임할 때 스스로 ‘큐레이터’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작문 자체를 하나의 전시회라 빗댔을 때 그 기획의 주제가 이미 주어진 경우도 있고 자의적으로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어진 주제의 이름을 ‘자기소개서’ 내지는 ‘독후감’이라고 해두자. 먼저 그에 어울리는 전시물을 선별한다. 전자라면 ‘성장 배경’, ‘큰 영향을 받은 인상적인 경험’, ‘현재 내가 지니고 있는 능력’ 같은 요소들이, 후자라면 물론 ‘내게 큰 인상을 남긴 지점’, ‘나의 관점’, ‘동의되지 않는 부분’ 등등이 전시를 이루는 특별한 오브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선별한 전시물을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해서 당신의 의도를 설득시키기 위한 순서로 배치하면 된다. 자유주제로 전시회를 여는 일도 어렵지 않다. 그런 전시회를 두고 ‘일기’나 ‘에세이’ 아니면 ‘소설’이라 부르면 좋을 듯싶다. ‘그날’ 우리가 지었던 표정이나 누군가의 손짓, 하늘의 빛깔… ‘지금’ 내게 남은 아련함은 훌륭한 전시물이 될 것이다.


전시는 그렇게 이관된다

이쯤 하면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전시회 주제가 무엇이든 그곳에 배치될 전시물은 모두 당신 안에 이미 존재하는 무엇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급작스레 떠난 여행,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쩐지 문장이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는 바로 그 책, 좋아하는 영화 속 한 장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곤 하던 멜로디, 누군가에게 상처 입혔던 기억 그 모두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 한 번도 개장하지 않은, 무지막지한 양의 전시물이 쌓인 창고인지도 모른다. 이것들을 어떻게 처분할지는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더께만 쌓여 가는 사물들로 이루어진 폐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부디 어딘가 유의미한 공간에 존재하길 빈다. 작문이라는 전시회를 통해서 말이다.

전시회, 라니. 정말이지 글이란 누군가를 속에 한 번 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내 안에서 길을 헤매지 않게, 그리고 당신이 전하고 싶은 감정과 생각의 흐름대로 전시물을 선별하고 안배하자. 사려 깊게. 누군가는 중도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전시물을 모두 둘러본 뒤 밖으로 나서는 누군가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 전시회는 성공이다. 마지막 관람객이 떠나고 폐장한 전시실은 누구에게도 선보인 적 없던 때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실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 기획이 언젠가 전시기간을 마친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이관되어 조금 더 길게 이어질 테니까.


앞선 질문을 한 번 더 상기하길 바란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던진 전시 주제다. 이 주제로 말미암아 당신은 어떤 전시회를 꾸밀 수 있을까?



임국영 작가 | dlarnrdud89@naver.com

아침에 잠들고 밤에는 일하며 새벽에 소설을 쓴다. 농담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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