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혼난 날
작성자
박경미 디자이너
작성시간
2019-02-12
작성시간
업데이트 : 2019-02-12
조회수
215

이 그림은 내게 참 아픈 그림이다. 그래서 참 잘 그렸다~ 꼭 기록해 두어야지 하면서도 아픈 그림이라 지금껏 하지 못했다. 첫째 선이는 선이만의 ‘속도’가 있다. 느린 것도 아니고 빠른 것도 아닌 중간 어느 즈음의 속도를 갖고 있다. 빨리 움직여야 할 때도 본인만의 속도로 느긋하게 움직이고 오히려 천천히 해도 될 때는 본인만의 속도로 빠르게 해치워 버리기도 한다. 문제는 시간이 많을 때에는 느리든 빠르든 상관이 없는데 시간이 없을 때, 특히 1분 1초가 아쉬운 아침 시간에는 큰 문제가 된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바쁜 아침이었다. 먼저 준비를 마친 나는 아이들이 그날 입을 옷과 양말을 꺼내 두고 아이들을 깨웠다. 선이는 매일 아침 느렸지만 그날따라 더 느렸다. 나는 끊임없이 선이에게 말했다.


선이야!!

일어났어?

일어났니?

일어나야 해!!

일어난 거야?

 

씻었니?

씻고 있어?

뭐 하고 있어?

아직도 안 씻었어?

얼른 씻어.

씻었어?

 

옷 입어야지

옷 입었어?

입었니?

입고 있어?

다 입었어?

안 입을 거야?

 

아.. 지금 글을 쓰면서도 짜증이 치밀어 올라오는 듯하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 난리인데! 하물며 어린 동생 민이도 알아서 씻고 옷도 입고 아침도 먹는데 도대체 얘는 멍하게 앉아만 있고 뭐 하는 건지!! 신발까지 온갖 채근을 해야 겨우 신는 선이를 보며 난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화를 냈다. 선이는 소리 내어 울진 않았지만 뒤돌아 눈물을 훔치는 듯했다. 그런데 그 순간, 선이가 우는 모습을 보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내 화가 폭발한 것이다.

 

울어?

너 울어?

너 왜 울어?

 너가 왜 우는데??

응? 말해 봐!!

너가 왜 우는데!!

 

선이는 훌쩍거리며 엄마가 본인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해서 운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난 그만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나는 신발장에 서서 선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마음을 몰라줘?

내가 니 마음을 몰라준다고??

그러는 너는 엄마 마음을 알아줬어?

도대체 왜 아침마다 매번 이러는데?

엄마가 항상 이러니?

아침에 바쁘니까 엄마 도와 달라고 했어 안 했어?

근데 선이 너 어떻게 했어?

씻었니? 씻었어?

옷 입었니? 양말 신었니?

밥 다 먹었니?

잠바 입었니? 신발 신었니?

엄마가 왜 맨날 맨날 이런 걸 물어보고 챙겨야 하는데?

니가 세 살짜리 애기야?

왜 한번 말하면 네~ 하고 안 하는데?

그래 놓고 엄마가 니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하다고?

그래서 눈물이 흘러?

 엄마야말로 니가 내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하고 열받고 너무너무 화가 나!!

엄마가 울고 싶다고!!

엄마가 울어야지

니가 뭔데 어디서 감히 울고 난리야!!!!

!!!!!!!!!!!!!!!!!!!!!!!!!!!!!!!!!

우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것은 처음이었다. 한번 폭발한 화산을 멈출 수 없듯이 그동안 참고 참았던 것들이 막 터져 나오는데, 소리를 지르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선 ‘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내가 조절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나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화로 씩씩거리며 여전히 눈물범벅인 선이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밖으로 나갔다. 심상찮은 우리 둘의 표정을 보고 유치원 선생님이 까닭을 물었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 드린 후, 선이를 부탁한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회사에 출근하는데 내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아이 앞에서 폭주하던 나의 모습과 나의 서슬 퍼런 눈빛에 충격받은 아이의 모습이 번갈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가 하원할 시간에 맞춰 친정집에 전화를 했고 선이에게 전화로 사과했다. 엄마는 잘 해보려고, 유치원 버스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 돼서 너무 화가 났었다고, 그래도 소리 지르고 그런 건 잘못했다고. 계속 생각이 나서 엄마가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선이는 사과하는 나에게 본인은 벌써 잊었다며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앞으로 아침에 선이가 부지런히 움직여 서로 도와주자고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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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그 일이 있은 후, 선이가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선이가 평소 그리던 그림 스타일과 매우 다르다. 손가락을 모두 그렸고 눈 코 입의 모양, 특히 눈과 눈썹의 모양이 매우 섬세하다. 그리기 귀찮아 생략한다던 주변 물건들을 자세히 그렸다(신발을 모두 짝지어 그린 것 등). 실제로는 없는 뒷벽의 빨간 세로 줄무늬를 통해 당시 선이가 얼마나 긴장했는지가 느껴진다. 나는 전과 달리 자세히 묘사된 이 그림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도대체 그 아침이 얼마나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길래 이렇게 그렸을까 싶어 가슴이 아팠다. 당시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나와 선이의 표정이, 허리에 손을 얹고 삿대질을 하는 나의 모습이, 두 손을 축 늘어뜨리고 하염없이 울고만 있는 선이의 모습이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 이 그림을 보다 결국 눈물을 흘렸더랬다. 이 그림을 그리며 선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나는 그림을 보며 선이에게 다시 한 번 사과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여전히 느리지만 그래도 전보다 부지런히 움직여 주는 선이가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이 그림은 엄마에겐 부끄러운 그림이지만 정말 잘 그렸다고 칭찬해 주었다.



KYONG / 박경미

딸 둘의 엄마이자, 14년차 제품 디자이너. 워킹맘으로서 폭풍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돌이켜 보면 잔잔한 일상으로 추억되는 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네이버 포스트에서 <두 아이 워킹맘의 기억 저장소>(https://post.naver.com/kyong_pkm)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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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체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