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러 갈래?
작성자
구현우 시인
작성시간
2019-06-03
작성시간
업데이트 : 2019-06-03
조회수
120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우리 뭐 볼까요 ― #1. 장르를 정합시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만났다. 당신은 “그래서 더 정확한 글쓰기가 무엇이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별말 없이 약속을 잡았다. 만나자마자 미안하지만 당신의 말에서 한 가지를 정정해야겠다. 정확한 글쓰기 대신 잘 드러나는 글쓰기로. 가볍게 가자. 그래 어때. 우리, 영화 한 편 보러 온 건데. 이번 만남에서 당신이 뭘 바랄지 모르겠지만 마치 내가 평론가라도 된 것처럼 작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쏟아 내길 바라진 않을 것이다. 영화적인 서사와 구조를 글쓰기에 빗대어 말할 줄 알았다면 그 기대도 배신하게 될 것 같다. 서로 머리나 식힐 겸 해서 오자고 한 건데. 오늘 테마 또한 이게 다다.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


가장 먼저 뭘 볼지 정해야겠지. 날도 더워졌는데 시원하게 공포나 스릴러? 조금 이상적인 로맨스? 주인공이 툭 치면 창문이 깨져 나가고 툭 치면 단숨에 조연들이 쓰러져 버리는 액션? 끌리는 게 있다면 그걸로 하자. 글을 쓸 때라고 뭐 다를까. 글의 성격은 장르를 선택한 순간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간 것이다. 이거 이런 장르야! 라고 공공연하게 밝힐 필요는 없지만 쓰는 자신은 알아야 한다. 대체로 모두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글을 쓸 것이나 사실 글은 제각기 색깔이 있다. 글 이전에, 종이에도 색깔이 있다. 종이의 색이 정해지면 글씨의 색도 정하기 쉽지. 검은 종이에 검은 펜을 쓸 순 없지 않은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뉘앙스를 전체적으로 깔아 주는 거라고 할까.


장르를 정했으면 작품을 찾기는 더 수월해질 것이다. 이제 관람 시간이다.


왜 쉽게 풀리지 않는 갈등이 ― #2. 러닝타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고편을 꼭 보고 오는 사람이 있고 장르와 제목, 출연진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 상영 전에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다. 중요한 장면을 미리 봐버리면 그게 언제 나오나 신경이 쓰여서 내내 집중이 안 된다. 당신이 어떤 유형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자. 오늘은 예고편을 먼저 보기로. 알고 보면 더 재밌는 게 있다. 나나 당신의 글쓰기도 때로는 그렇다.


러닝타임을 인식하고 들어가자. ‘2시간짜리 영화인데 1시간 40분까지 한창 이야기가 고조되고 있으니 10분쯤 후에 대충 “위아더월드”하고 끝나겠네’, 하는 식으로 타임 자체만을 두고 보라는 것은 아니다. 단편이 효과적인 이야기인지 중편 또는 장편이 아니면 감당이 안 될 사건인지 파악하고 들어가자는 거다. 하루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지듯 작품 또한 맥락을 나눠서 짚을 수 있다. 아직 쓰이지 않은 글이래도 그렇다. 여기서 이런 도입, 저기서 이런 클라이맥스, 결국엔 이런 엔딩. 구조는 쓰인 이후에도 바뀔 수 있겠지만 그건 편집의 몫이라고 생각하자. 모든 사건에는 갈등이 있고, 푸는 방식마다 차이를 보일 뿐이다. 시간이 덜 걸릴 수도 더 걸릴 수도 있다. 하나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해야 한다는 걸. 다음은 모른다. 속편을 미리 기약하지 말자.


없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 #3. 극장에 다시 불이 켜질 때까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다른 세계에 갔다 오는 경험은 언제나 놀랍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그런 면에서 좋다. 빛과 차단되어 있고, 눈과 귀를 한가득 압도하고, 입을 다물게 한다. 잘 만들어진 한 편은 더욱더 헤어 나올 수 없게 한다. 요약하자면, 장르를 정했다. 괜찮아 보이는 제목(혹은 줄거리)에 끌려 내용을 짐작했다. 그러면 이제 몰입만 남은 것이다. 장르―이야기에 불필요한 말이나 장면은 다 지워 버리자. ‘범인을 잡으러 가는 주인공’을 보여 주자 결심했다면 (일견 무관해 보일 수는 있어도) ‘잡으러 가는 과정’만을 보여 주면 된다. 그 외에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정해진 분량이 있으니 알짜만 골라서 보여 줄 수밖에.


실제 스크린에 나온 장면만 딱 촬영해서 보여 준 것일 리도 없다. 편집을 거쳐야 작품이 된다. ‘감독판’이 있다면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모든 상황이 원테이크로 흘러가진 않는다. 도입 이전에, 장면과 장면 사이에, 결말 이후에 다 보이는 곳에는 ‘없는’ 장면이 있다. 하나의 세계 안에는 그런 장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로 없는 것이 아니기에 짓는 사람이라면 다 그려볼 수 있어야 한다. ‘범인은 죽었고’, ‘주인공이 떠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 안에서 더는 말해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쓰고 보는 자신(나 그리고 당신)은 알아야 한다. 스스로 안에서는 계속 끌고 가야 한다. 극장에 불이 들어와도 우리가 아직 그 세계의 여운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다.


그러므로 한 편은 완결 이후에도 완성된다. 누구도 아닌 당신의 손에서.


Cut. 내가 본 것과 당신이 본 것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 좋겠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이렇게 헤어지기로 한다. 뒤를 돈 당신은 기억나는 장면 속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우고 그럴듯한 대사를 넣으며 걸어갈 수 있다. 나 또한 내가 본 것을 내가 원하는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본 우리의 영화는 막을 내리지 않는다.



구현우 시인 | stoyer@naver.com

눈 뜨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숨 쉬는 마음으로 음악을 한다. 

듣거나 보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하면서, 겨우 한 사람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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