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건은 다른 용도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작성자
구현우 시인
작성시간
2019-06-18
조회수
124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취급주의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더는 의미가 없는 것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거야’라며 보관해 두곤 한다. 특히 종이류는 더 그렇다. 약 10년 전부터 (내가 쓰고 뽑거나 남이 쓰고 나눠준) 시, 소설, 에세이, 시나리오, 비평, 희곡, 참고 자료, 발제문 등 A4로 출력된 프린트물을 빠짐없이 챙겨 두고는 했다. 틈이 날 때 한 번씩 펼쳐 보냐고 한다면 글쎄, 그렇지는 않다. 사실 다시 볼 일이 없을 텐데도 ‘언젠가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어릴 적에 누군가에게 받은 작동원리도 기억나지 않는 장난감을 여태 보관하게 되는 것도 그런 것일 수 있다. 어딘가 쓸 일이, 언젠가 찾게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취급주의 x

‘버리지 못하는’ 습성은 나의 글쓰기에도 분명한 영향을 줬다. 글에 사물(또는 잡동사니)이 나올 때 한 가지 용도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쓸 수는 없을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책상을 책상으로만 쓰기에는 뭔가 아까웠던 거다. 신고 다니지 못한다면 신발의 존재 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겠지만, 나 혹은 당신의 텍스트 안에서는 신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에서 하나뿐인 신발이 될 수 있다. 밑창이 다 해졌거나, 반대로 한정판이라 먼지 한 톨 묻는 게 싫다거나, 신발은 멀쩡히 기능하는데 그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실제로 누구나 신발장 안에는 잘 신지 않는 신발이나 구두가 한 켤레쯤은 있지 않은가.


오브제(objet)란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거기’에 있다. 다만 있으므로, 작품 속에는 물건(object) 그대로 들어오기도 하고 변형된 형태의 사물이 되기도 한다. 오브제에 무슨 뜻을 담지 않아도 된다. 오브제는 오브제일 뿐이다. 맥거핀(MacGuffin : 속임수. 미끼. 극 안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도 좋다. 우리 생활에는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물건만 근처에 있지 않다. 대부분은 그냥 놓여 있을 따름이다.


일상에서는 특히 많다. 헬스기구를 샀는데 빨래 거치대가 됐다, 같은 유머러스한 이야기도 있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다들 그랬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쓸 수 없다면 저렇게라도 쓰자, 가 공통된 심리인 듯하다. 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쓰는 일이 질렸다면 저렇게 써 봐도 된다. 만든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만 사물이 쓰였다면 온갖 발명품은 나올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잘못 써도 된다. 정해진 대로 잘 쓰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 쓰는(use) 일을 달리함에 따라 쓰는(write) 양상이 변한다.


고장 나면 고치면 됩니다

오래된 물건은 가만 보관해 두게 된다. 수리비를 부담하느니 새로 사고 말지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글 속에서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책상이 기울고, 문고리가 돌아가지 않고, 밥솥이 작동하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꼭 처음으로 돌아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새것’과 ‘새것이나 다름없다’는 같지 않으니 말이다.


텍스트 안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끼는 물건을 텍스트 안에서 잃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있는 것을 그대로 가치 있게 쓸 수도 있지만, 있는 것을 조금 바꿔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있는 그대로의 가치보다 높아질 거라고는 절대 보장하지 않는다. 오브제로서, 가치가 있냐 없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르게 써 보는 일 자체가 의미다. 물건의 한계는 물건이 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쓰는 사람의 몫이다.



구현우 시인 | stoyer@naver.com

눈 뜨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숨 쉬는 마음으로 음악을 한다. 

듣거나 보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하면서, 겨우 한 사람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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